IROIRO PHILOSOPHY
[치아리] 20220604 2:14 a.m. 본문
지금까지 써준 편지들을 전부 정독했어 다 합쳐서 예순 한 장이더라 엄청 많지? 읽는데 한 시간 반도 넘게 걸렸어
요즘 육백 페이지가 넘는 책 하나를 읽고있어 심지어 이게 일권이고 한 권 더 있대 몇번이고 읽으려고 시도했는데 매번 실패해서 이번이 3번째 시도야 이번엔 다 읽었음 좋겠다 그래도 반은 넘게 읽어서 이번엔 뭔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나는 글을 읽는게 좋아 정신이 산만한 편이어서 글을 읽을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좋아
잘 다듬어진, 배운 사람들이 쓴,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쓴 수많은 소설들도 좋지만 가끔은 두서 없는, 깔끔하지 않은, 하지만 진실된 편지들을 읽는게 더 좋더라
그런 마음에 책을 읽다가 급하게 편지로 노선을 바꾸었네요
색종이에 적은 편지, 편지봉투 없이 쪽지로 접은 편지, 편지지가 너무 많아 편지봉투에 꽉 껴 빼느라 애먹은 편지, 스티커가 들어있는 -물론 사용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쓰지않고 간직할거지만- 편지, 악필이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편지, 그림 선물이 들어있는 편지, 직접 만든 편지봉투에 넣어준 편지, 투정 가득한 편지, 이젠 올해인 내년을 기약하는 편지, 가장 처음 받은 편지부터 가장 최근에 받은 편지까지 많은 시간들이 날 위해 쓰였더라고
나와 너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너무 쉽게 미래를 약속하고 그리는 것 같아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십년후에도 늙어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영원히 활동해줘' 라던지 '평생 응원할게' 이런 말들
어떻게 생각하니 내가 뱉은, 네가 뱉은 이 말들은 모두 지켜질 수 있을까? 답은 사실 아니오 라는건 모두 알고있지 하지만 그런 약속을 하면서 우린 함께 할 내일의 시간을 벌고,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둘만의 신호를 만들어 그 말들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널 이만큼 좋아해' 라는 은유적 표현이겠지
그걸 아니까 그 말들이 더 소중하다 넌 너의 몇십년 후의 시간을 담보로 나에게 사랑을 말하고 난 그 시간을 빌려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라는 겁쟁이의 말보다 차라리 다시 돌려받을 그 시간들을 담보로 큰 사랑을 표현해주는게 좋아
넌 어때 너도 그런 거짓말들을 사랑하니 난 거짓말 없이 사는 세상은 너무 밋밋한 거 같다고 생각해 모든 이야기는 거짓말과 가정에서 피어난다고 생각해
평생 응원해주겠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겠다는 거짓말 속에서 밋밋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것처럼
거짓에 초점을 두고 가식적인 사람이라고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주라 거짓 속의 낭만이라고 그 낭만이, 추억이, 마음이 거짓말인건 아니니까
편지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꾸준히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 의외의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발걸음이 뜸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사람들까지
다들 잘 지내시나요 저는 별 일 없습니다
몇년 몇월 몇일의 시간이었는진 모르겠지만 그 편지를 쓰는 잠시동안 나를 생각해줘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난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겠지 분명 그럴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무탈하게 평균 수명을 산다는 전제하에- 죽기 전에 살아온 시간들을 그래프로 그려봤을때 우리가 함께 한, 치아리 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만난 시간은 분명 다른 시간들에 비해 현저히 짧을거야 하지만 최고의 순간 top5를 선정한다면 그중 한 씬은 이곳에서의 시간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그만큼 크게 빛나는 시간들이니까
혹시 언어의 온도를 느껴본 적이 있니 자주는 아니지만 난 있어
그 온도가 순간의 발화인지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난 알 길이 없지
내가 타인의 말에서 온도를 느낀건 단순히 그 말이 내가 듣고싶었던 말이었기에 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듣고싶은 말을 해줬다는건 타인이 나의 마음을 간파했다는, 나의 마음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가까이 지켜봤다는 뜻 아닐까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물론 나도 엄청 자주) 가끔은 이유 없이 미워하고 작은 일에도 약점이 잡혔다 하면 심판대 위에 올려두고 이리저리 굴려보며 서로 썰어대기 바쁜 것 같아 이럴때면 참 사람이 싫고 어려워
근데 또 이렇게 언어의 온도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걸 보면 사람을 마냥 미워하지는 못하겠더라
또 거짓말에 속아서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현실을 사랑하게 돼
너도 그러길 바라 내가 사랑하는 세상을 너도 사랑해주길 바라
어느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어 작년 여름의 편지였는데, 내년 여름도 함께 하자고
그때 약속했던 내년 여름이 올해 여름으로 이름을 바꾸어 우리에게 다가오고있어
나는 과연 언제까지 우리가 만들었던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까? 반대로 넌 언제까지?
아무도 모르겠지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걸
어차피 모를거 불안해하기보다는 모르니까 더 많이 약속하자
어차피 전부 지켜지진 못할거 그냥 질러버리자
속마음이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적고싶어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는데, 이런 넋두리나 적어버렸네 여기에 적는 글들은 따로 트위터에 공유하지 않을게 나한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겠지 하는 생각에 그리고 아이돌 자아가 빠진 글들이라서 굳이 모두 와서 봐주세요~ 하고 알리고싶지도 않고 그냥 아이돌 치아리 보다는 인간 나 같은 글들이었네요 쓰는데 한시간 십분이나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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